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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고도 고통스럽고 처절한 사랑,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

polarstarbear 2025. 9. 1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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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청설모가 되기 위해 들어온 이곳에서, 구가 말했다.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을 거야.

나를 먹을 거라는 그 말이 전혀 끔찍하게 들리지 않았다.

네가 나를 죽여주면 좋겠어.

병들어 죽거나 비명횡사하는 것보다는 네 손에 죽는 게 훨씬 좋을 거야.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 채 모로 누워 팔과 다리와 가슴으로 상대를 옭매었다.

<구의 증명>_156p

불행해도 옆에 네가 있어야 하고, 행복해도 옆에 네가 있어야 해.

끝내 서로를 원한 구와 담의 이야기

 

등장인물인 구와 담의 시선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며 같은,

함께 겪었던 사건에 대해서도 서로 서술하는 내용과 입장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서로를 원한 구와 담의 이야기는 죽어서도 그것이 사랑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습니다.

또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구와 담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죽은 이후 자신을 먹고 있는 담을 보며 구의 처절한 마음도 이 소설의 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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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_구가 죽은 이후>

담은 어둑한 새벽 전화 부스 근처에서 죽어있는 구를 발견했습니다.

구는 이빨이 빠지고 멍들고 상처든 몸보다 불러도 대답 없는 구의 시신에 믿기질 않아 했습니다.

술에 취한 취객인 척 구를 데리고 집에 온 담은 추운 날 둘이 함께 씻고 꼭 끌어안았던

큰 대야를 가져와 구를 씻기고 알코올로 몸을 소독했습니다.

고운 눈매, 산처럼 솟은 코, 귀여운 귀, 각질 인 피부, 아이 볼 같은 엉덩이를 보고 만지며

담은 구와 함께 죽음에 대해 얘기했던 순간을 떠올립니다.

무섭고 슬픈 이야기는 우리 좀 더 건강해진 다음에 농담처럼 나누자고 건강해진 다음에

나누자고 말을 끝낸 다음 구가 말했습니다.

"만약 네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생각을 끝낸 담은 다짐합니다. 구와 담을 사람 취급 안 하고 괴롭힌 놈들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죽은 구와 끝까지 살아남기를 마릅니다.

그래서 내가 담이 죽어야 구가 죽게 만들기 위해, 구를 따라 죽는 게 아니라 담을 따라 죽게 만들기 위해,

담은 구를 먹기로 합니다.

<과거_구가 죽기 이전 어린 시절>

담은 할아버지와 둘이 살다 돌아가신 후 이모에게 맡겨졌습니다.

돌아가시기 전까진 둘은 서로의 존재 자체를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이모는 담을 부족함 없이 키우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었고 열렬히 그녀를 사랑하고 위했습니다.

담도 세상에서 이모만을 사랑했었습니다.

구와 담은 초등학교에서 입학해 처음 만났습니다.

구는 일부러 담의 가방을 뺏고,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실내화를 멀리 집어던지며 괴롭혔습니다.

그런데도 담은 구를 싫지는 않았고 조금 밉기만 했습니다.

그런 구에게 인사를 하고 싶기도 했고 제대로 이름도 부르지 못한 채 열 살이 되었습니다.

담이 꾀병을 부려 학교에 가지 않은 날 구도 무엇 때문인지 학교에 가지 않았고

둘은 우연찮게 평일 오전 적막한 골목에서 마주칩니다.

서로 왜 여기 있냐 물었고 그 질문은 의문보다 반가움이, 말을 걸어 설레고도 기뻐하는 마음 짙게 묻어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구와 담은 밤낮없이 붙어 다녔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까만 밤이 올 때까지 집에 가만히 누워있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담의 이모가 구에게 집에게 가라고 하거나 장사를 끝낸 구의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말입니다.

<현재_구가 죽은 이후>

죽고 나서 적막과 공(空)의 세계에 있는 구는 실체 없는 자신을 분명히 느끼며 눈이 아닌 온몸,

온 마음으로 자신을 먹고 있는 담을 봅니다.

이렇게 뻔히 보이는 한 공간에 함께 존재하지만 닿을 수 없으니 둘의 우주는 전혀 다릅니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에서도 구는 담을 생각합니다.

<과거_구가 죽기 이전 어린 시절>

열두 살이 된 해에 계속 붙어 다니는 구와 담에겐 여러 가지 안 좋고 더럽고 나쁜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그랬는데도 둘은 소문은 소문일 뿐 서로에게 둘의 존재는 그것보다 더 거대했습니다.

어느 날 학교 청소 시간 담에 대한 더지의 저속한 행동에 참지 못해

싸운 구는 6학년인 더지의 형이 친구들을 데려와 흠씬 두들겨 맞고

서로의 부모님이 오며 교무실로 불려갑니다. 혼나는 교무실에서 구와 담은 손을 꼭 붙잡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그 손 놓고 얘기하라 했지만 담은 놓기 싫었습니다.

그렇지만 잘 살고 유복한 더지의 가족보다 빈약하고 유복하지 않은 자신의 인생과 삶이

담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손을 놓아버립니다.

그 순간 담은 사나운 사람으로 득실거리는 광장 한가운데 내팽개쳐진 벌거숭이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이 사건 이후 멀어진 구와 담은 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서로를 도통 볼 수 없었습니다.

담은 친구나 공부나 학교 따위 구와 비교하면 너무 시시해 그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보고 싶은 마음으로 걷다 보니 어느새

담은 구의 집으로 향했고 굳게 닫힌 문을 보며 마음으로 계속해서 구를 불렀습니다.

구의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집으로 향한 담은 자신의 집 앞에서 구를 보게 됩니다.

야.

구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너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너도 이러고 있었잖아.

내가 묻고 구가 대답했다.

<구의 증명>_52p

구와 담은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열두 살 때처럼 그보다 더 어렸을 때처럼 손을 잡고

같이 누워 수다를 떠는 것을 못했습니다.

구는 성숙하게 변한 담이의 모습에 묘한 거리가 느껴졌고 주눅이 들어 담이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습니다.

이런 구는 담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바람 부는 거센 절벽 위에 자신을 세워 놓은 것 같았고, 담을 보지 않아도 보아도

상상 속에서 담의 속살을 생각하고 구의 욕망과 금기의 주머니는 공평하게 커져갔습니다.

담은 그런 구를 보며 몸 안에 방음벽이라도 두른 것 같았고,

벽에 걸러져 밖의 소리도 잘 들어가지도 않고 내면의 소리도 퍼져 나오지 않는 것처럼

느낌이 들 때마다 마음이 아팠고 안달이 났습니다.

자신에게만은 그러지 않으면 좋겠길,

위험한 세상 대하듯 자기를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길.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던 시간이 흘러 중학교를 막 졸업했을 때

구와 담은 막다른 골목에서 서로의 입술을 뜯어 먹는 것처럼 첫 키스를 합니다.

열 입곱 살이 되자 구는 부모님의 빚을 갚기 위해 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새벽에는 큰 야채가게에서 야채를 받아 정리하는 일을 했고, 낮에는 학교,

저녁부터 밤늦게까지는 공장에서 일했으며 주말에는 편의점 두 곳을 돌며 일했습니다.

그래서 구와 담이 만나는 유일한 시간은 공장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십여 분뿐이었습니다.

이십여 분 함께하는 시간에 어느 순간부터 노마도 있었습니다. 노마는 구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부모님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공장에서 보냈습니다. 학교 숙제를 하고 학원 숙제를 하며 말입니다. 이런 노마에게 구는 관심이 생겨 말을 걸고 책 모퉁이에 그린 그림을 보며 친해지게 되고,

자연스레 노마 부모님이 퇴근을 못할 때에는 집까지 데려다주며 자전거 타는 법도 가르쳐 줍니다.

우리의 행복, 행복이기에 불행.

겨울이었던 어느 날 자주 들르던 붕어빵 가게에 들러 어묵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 구와 담은 서로를 보며 몇 마디를 나눴고,

그 짧은 사이에 노마는 어두운 밤길 트럭에 치여 죽게 됩니다.

노마의 죽음 이후 시간이 흘러도 노마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이 됩니다.

노마를 잃은 뒤 얼마간 구와 담은 서로의 아픔을 알기에 억지로 피하며 눈을 떠도 감아도 눈앞에서 무한 반복되는 그날의 사고가 어느 정도 흐릿해질 만큼의 시간, 지속적인 악몽이 드문 악몽이 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구는 담과의 거리가 멀어지며 공장에서 알게 된 진주 누나와 가까워집니다.

처음에는 간단한 간식을 챙겨주고 언젠가부터는 도시락을

언젠가부터는 누나 집에서 찌개를 먹으며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몇 날 며칠을 함께 보냅니다.

진주 누나에게 풋풋하고 사랑을 받고 있던 시간이 사라지고

영영 남처럼 헤어지자면서 걱정과 안위가 섞인 작별 인사를 하는 그녀에게 화를 내며

구도 끝을 말하며 부모님, 담, 누나, 같이 일하던 사람들에게 아무 인사도 없이 입대합니다.

<현재_구가 죽기까지>

구가 군대에 있는 동안 담의 이모는 할아버지와 같은 병으로 사망하게 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없고 '나만 살아 있다.'

이 문장의 의미에 대해 매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전역 한 구는 동네에 들어가 양지와 등심을 사 부모님이 머물던

다 망가진 가게 냉장고에 양지를 넣어둔 후 등심을 들고 담을 만나러 나섭니다.

오랜 시간이 걸려 다시 만난 구와 담은 담의 집으로 가 고기를 구워 먹고 같이 살게 됩니다.

이후 사채업자의 촉독을 피해 가며 전국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와 담은 몰래 살아갑니다.

그러다 결국 그들에게 잡힌 구는 두들겨 맞는데도

담을 기억하는 자신을 잃기 전에 담을 보고 싶었기에, 담을 만나고 싶었기에,

급하게 탈출해서 나오다 차에 치인 후 공중전화 부스에 들려 수화기를 들었지만, 결국 사망한 채로 담에게 발견됩니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구를 끌어안고서 새벽이 오도록 구의 서른 걸음을 상상했다.

죽어가며 간신히 움직인 그 의지를, 뼈와 근육을, 구의 마음을,

어떤 상상도 견딜 수 없어 차라리 나의 뇌를 꺼내 내팽개치고 싶었다.

구는 길바닥에서 죽었다.

무엇이 구를 죽였는가.

나는 사람이길 원하는가.

<구의 증명>_165p

 

나에게 화가 났어.

내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이 널 괴롭게 하는 것 같아서.

그렇지, 내 마음이 널 괴롭게 했다.

처음뿐 아니라 우리 함께한 지난날 모두,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마음이 널 괴롭혔고, 괴롭히고 있다.

사랑이란 원래 그런 것일까.

다른 이들도 그러할까. 죽어서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

·

담아

밖을 봐, 네가 밖을 봐야 나도 밖을 본다.

네가 살아야 나도 살아.

담아.

이 바보야.

<구의 증명>_170p

더 좋은 것 따위 상관없는 지금 내게 가장 좋은 것.

지금 그게, 네가, 모든 게 너무 좋다. 더 좋은 것 따위 생각나지도 않게 말이다.

멀어지고, 오래 지나도 서로를 갈망하고 마음 한구석에 가만히 거대하게 자리 잡은 사랑 이야기.

이 사랑 이야기는 아름답고도 잔인하며 서로를 옭아맵니다.

다른 식물을 타고 올라 기생하며 살아가는 덩굴들처럼 말입니다.

구와 담은 진심으로 서로의 행복과 불행을 바랐기에 끝내 누군가가 기다리는 누군가를 마음에 품는 결말을 맞이합니다.

구와 헤어져 평범한 한 사람으로 평범한 주부로 살아갈 수도 있었던 담은 그럼에도 구를 선택하고 기다립니다.

구가 있어야 행복도 행복할 수 있고 구가 있어야 불행도 구의 탓을 하지 않는 순수한 불행이니깐 말입니다.

구가 없으면 행복해도 구가 없기에 행복에 대해 물음 생기고,

구가 없으면 불행도 구가 없기에 불행의 탓을 그에게 돌릴 수도 있으니까요.

따라 죽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사랑한 이를 먹어 기억을 보존하고

마음을 함께하기 위한 숭고한 담의 정신은 놀랍기도 합니다.

무와 공의 세계에서 그런 담을 보며 그녀가 언젠가 죽기까지 행복하기를 바라며 구는 천년만년 기다림을 약속합니다.

그럼에도 죽게 된다면 빨리 만나고 같이 있고 싶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더 오래 살 수 있도록 바라는 구의 모순적인 마음조차 공감을 자아낸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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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비가 내려 심해 같은 두려운 물웅덩이 속 빛을 내는 작은 모래 알갱이 같은 두 남녀의 숭고한 사랑 이야기.

 

언젠가 네가 죽는다면, 그때가 천 년 후라면 좋겠다.

천 년 토록 살아남아 그 시간만큼 너를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이미 죽었으니까.

천만년 만만년도 죽지 않고 기다릴 수 있으니까.

<구의 증명>_1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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