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누구나 '가지고 할' 그 무엇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그 무엇, 혹은 차라리 자기가 '되어야 할' 그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옷이 아무리 남루하고 더럽더라도 새 옷을 사서는 안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처신해오고, 일을 해오고
또 항해를 해온 결과 스스로 헌 옷을 걸친 새사람처럼 느끼고,
그래서 더 이상 헌 옷을 계속 입으면 낡은 병에 새 술을 담은 것처럼 느낄 때까지는 말이다.
<월든>_45~46p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자연을 사랑한 남자와 월든 호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_사진 / 출처_교보문고 인물&작품 https://store.kyobobook.co.kr/person/detail/2000028601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자연을 사랑했고
초월주의 철학가 랄프 왈도 에머슨을 만나면서
문학 활동에 큰 전기를 맞습니다. 에머슨은 소로우를 그의 집에 집사로 취직시켜
현실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으며 이때 서재에 있던 많은 책을 읽었고
그 덕분에 중국 철학과 인도 철학에도 눈을 뜨게 됩니다.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19세기 미국 문학의 주요 사건인
초월주의 운동을 이끌어나갔습니다.(출처_교보문고 인물 소개)
1845년 소로우는 마을을 등지고 월든 호수로 와,
소박하고 원시적인 삼림 생활을 통하여 인습에 구애받지 않은 새로운 삶을 실험했다.
손수 통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물고기를 잡으면서 2년 이상을 이 호숫가의 숲속에 사는 동안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회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기회를 가졌으며, 불후의 명작이 될 <월든>의 핵심 부분일 썼던 것이다.
(출처_<월든>_옮긴이의 말)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소로우는 급우들과는 달리 소위 세속적인 성공이란 것에 깊은 회의를 품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칫하면 타협의 길을 될지도 모를 전문 직업의 닦인 가도를 걷기보다는,
차라리 측량 일이나 목수 일 같은 정직한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평생 그는 그 어떤 것에도 속박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인간의 길을 탐색한다.(출처_<월든>_옮긴이의 말)
<월든>은 어떤 책인가?
초월주의 이상주의자가 쓴 책일까?

*초월주의 : 직관적 지식과 인간과 자연에 내재하는 선함 및 인간이 양도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한 믿음을
망라하는 관념주의의 한 형태
소로우의 대표작 <월든>에는 최소한 네 권의 책이 들어있다고 한다.
-
첫째, 가장 낮은 차원에서 이 책은 <로빈슨 크루소> 같은 모험기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저자가 어떻게 문명사회의 온갖 편의를 훌훌 털어버리고
숲속에 들어가 원시생활을 하면서 마치 개척자와도 같이 자연환경에 대처해 나가는가를 지켜본다.
둘째, 자연 묘사에 있어 미국 문학뿐만 아니라 서양 문학을 통틀어서도
<월든>을 따를 만한 작품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계절이 바뀌면서 변화하는 월든 호수 및 주위 숲의 모습,
또 그 속에 사는 온갖 동식물이 참으로 생생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호수의 주정꾼 개구리들, 자연의 귀염둥이 새 들꿩,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그 특징인 되강오리, 콩밭을 망쳐 놓은 우드척,
어둠의 정령인 부엉이들, 사냥꾼에 쫓기는 여우들이 이 책의 곳곳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셋째, <월든>은 <걸리버 여행기>처럼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서이다.
소로우는 사회의 여러 가지 통념에, 특히 세속적인 성공의 개념에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그는 그 누구보다도 명확히 물질문명의 폐해를 내다보았다.
그는 산업의 발전이 인류에게 안락과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는
19세기의 일반적인 기대감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월든>은 소로우의 정신적인 자서전이다.
<월든>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력적인 책이지만 현대의 독자들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참다운 인간의 길,
자유로운 인간의 길은 무엇인가 하고 끝없이 물으며 그 길을 찾아가는 소로의 구도자적인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그가 찾아낸 해답에 대해서 전적으로 공감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거짓과 위선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며 인습과 고정 관념에
얽매이기를 거부하는 진실을 향한 그 대쪽 같은 집념에 대해서는 깊은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출처_<월든>_옮긴이의 말)
아래 글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 읽기 : 소로우는 초월주의적 이상주의자인가?'에 대한 논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논문 저자는 '김은성' 연구자이며 논문에서 <월든>에 나타난 자연의 의미와 역할, 소로우의 자아와 자연관의 상응관계,
자연에서의 삶의 양식 등을 분석하면서 소로우가 단순히 관념 위주의 초월주의적 이상주의자가 아니었음을 논의합니다.
(출처_논문_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 읽기 : 소로우는 초월주의적 이상주의자인가?'_저자 김은성)
소로우에게 자연은 최소한의 필수품으로 자립적으로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이자 정신적 갱생을 위한 공간이며 개인의 정신을 각성시킬 수 있는 일종의 "도덕적 지평"을 제공한다.
따라서 자연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현실적인 공간이자
정신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일종의 상징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로우는 단순한 초월적 이상주의자라기보다는 인간의 세계와 자연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주의자라고 칭하는 것이 더 적당할 것이다.
보통 <월든>은 숲속에서 자연과의 상응관계 속에서 검소한 생활을 영위한 은자의 기록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소로우의 의도는 탐욕과 정신적 마비 상태에 있던 미국인과 미국 사회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었다.
따라서 동면에 빠져있는 당대 미국인들의 마비된 의식이 각성 상태로 재생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제기야말로
<월든> 텍스트 전체를 견인하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감지한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재확인하고 이에 대한 대안적인 삶을 실천하기 위하여 숲으로 들어갔다.
"나는 의도적으로 살기 위해서 그리고 삶의 본질적 사실들만을 직면하기 위하여 숲으로 갔다."
<월든>이 숲에서의 약 2년 2개월 삶을 기록한 것이지만 소로우가 숲에서 생활하는 동안 바로 작성한 기록은 아니다.
이 작품은 소설 형식의 일반적인 줄거리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월스(Walls)의 지적처럼 회피, 갱생, 성장, 그리고 회귀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사회와 분리된 자아와 정체성을 위한 실험이 구성일 수도 있다.
물질적 가치에 맹목적인 삶은 그 가치 틀 안에서만 갇혀있는 폐쇄적인 삶이다.
소로우도 그의 동시대인들의 삶이 비루한 것은
그들의 가치체계가 이러한 양식에 얽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뉴잉글랜드 주민들은 우리의 비전이 사물의 표면을 통찰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비루한 삶을 산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여기서 사물은 구체적인 개별의 사물뿐 아니라 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모든 가치체계도 포함한다.
따라서 사물의 표면을 통과하거나 넘어서 통찰하려는
소로우의 초월주의적 비전은 이러한 폐쇄적인 가치체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이다.
미국의 초월주의는 인간, 자연 그리고 신과의 복합적인 관점인데, 우선 소로우의 초월주의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월든>에서 자연은 상징 그리고 실재 또는 현실의 양의성의 자연은
개인 자아 정체성, 인간의 문화를 배양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차원의 자연은 윤리적, 미학적, 그리고 생태적 가치의 세계가 된다.
자연의 본연의 실체에서 인간적인 가치를 추구하려면 자연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을 초월하여 그 너머의 영역을 탐구하여야 한다.
보통 이러한 과정은 개인과 자연과의 상응관계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관념적이거나 단순한 교감이 아니라 개인의 상상력이 수반된 창조적 활동이 된다.
따라서 <월든>에서 새로운 도덕적 그리고 정신적 가치를 찾는 것을 주요 프로젝트로 삼고 있는 소로우에게 이 상응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초월적 과정은 내적 정신적 탐구의 기반이 된다.
소로우도, 에머슨처럼, 자연에서 관습적이고 제한적이며 순응적인 자아를 초월하려 했다.
그가 아주 날카롭게 비판했던 동시대인들의 노동윤리는 이런 자아에 기반하고 또 그 자아를 다시 강화한다.
이 노동 윤리에 대한 대안으로 숲으로 들어가 가장 기본적인 삶을 실험하는 것은 보다 더 개방적이고
자립적이며 독립적인 자아를 추구하려는 노력이었다.
자연은 인간 세계에 창조적 힘, 이 세계를 끊임없이 새롭게 하는 힘을 제공하는 원천임을 의미한다.
소로우는 초월주의를 출발 지점, 다시 말해서, 직관적 이해와 적극적인 자연 탐구를 정당화하는데 이용한다.
이는 소로우의 초월주의는 닫혀있는 예정된 결론이 아니고 의미가 형성되는 과정임을 의미한다.
소로우의 초월주의는, 에머슨이나 휘트먼처럼 이분법적 비전이나 현실을 그대로 초월하려는 것이 아니라 해체한다.
(출처_논문_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 읽기 : 소로우는 초월주의적 이상주의자인가?'_저자 김은성)
나는 그의 노동을 경멸하며 모든 것에 가격표가 매겨져 있는 그의 농장도 경멸한다.
그는 단 몇 푼이라도 받을 수만 있으면 경치라도,
아니 그가 믿는 하느님이라도 시장에 가지고 나가 팔려고 할 것이다.
사실 그의 진짜 하느님은 시장에 있다.
그의 농장에서는 아무것도 공짜로는 자라지 않는다.
그의 밭에서는 곡식 대신 돈이 자라며, 그의 꽃밭에서는 꽃 대신 돈이 피어나며,
그의 과일나무들에는 과일 대신 돈이 열리는 것이다.
그는 과일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지 않으며,
과일이 돈으로 환금되기 전에는 완전히 익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월든>_295p
우리는 한편으로 모든 것을 알아내고 탐색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신비에 싸인 채 탐색되지 않기를 바라며,
육지와 바다가 무한의 야성을 지니고 미개척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우리가 자연을 아무리 받아들이더라도 결코 그 도가 지나치는 법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무진장한 힘, 웅대한 지세, 난파선의 잔해가 깔린 해안,
살아있는 나무와 썩어가고 있는 나무들이 뒤엉킨 황무지, 천둥을 품은 구름,
3주간이나 계속되어 홍수를 낸 폭우 등을 목격할 때마다
자연에 대한 안목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며,
우리가 결코 가지 않는 곳에 어떤 생명이 자유로이 풀을 뜯는 것을 목격할 필요가 있다.
<월든>_468p~469p
마침내 즐기게 될 찬란한 여름
우리는 아직 그 무엇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있다.

출간 당시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오늘날 필수 고전서로서
소로우와 <월든>에 대해 다양한 시각에서 연구도 하며 논문을 작성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저 또한, 본문에서 요약해 드린 것과 같이 <월든>과 소로우에 대해 연구한 논문을 읽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논문도 한 편 읽으며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우리는 현재 순수하고도 완벽한 놀이를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철저하게 물질적인 것에 둘러 싸인 지금 현대인은 가장 중요한 것을 잊은 채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산업화 이전과 이후, 소로우는 돈과 산업에 눈이 멀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철저하게 비판했습니다.
숲을 밀어 개간하고 농장을 지어 돈을 벌고, 돈으로 늪을 메꾸는 사람을 사고, 겨울날 단단하게 언 호수의 얼음을 캐는
모든 이가 소로우에겐 자연을 파괴하는 이었으며 알 속에 갇혀 아직 깨어나지 못한 새와 같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소로우는 월든 호수에 오두막을 지어 자기가 생각하는 진정한 삶을 개척하기에 이릅니다.
호수에 찾아오는 다양한 생물들을 관찰하고, 계절에 따른 호수의 변화를 기록하고,
가끔 찾아오는 낚시꾼과 친우와 대화도 낱낱이 기록합니다.
미국 사회 통념적인 물질주의에 대한 비판과 자연에 대해 초월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소로우의 <월든>은
그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 볼 것이 아닌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도 비추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진정 살아가고 있는 삶을 진실되게 하기 위해서 자연을 마주 봐야 하며
그 이상 너머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끝난 것이 아니며, 알을 깨지 못했다고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당당히 문제를 바라볼 수 있고 알을 깨기 위한 태동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영국인이나 미국인이 이런 이야기를 다 이해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것이 단순한 시간의 경과만 가지고는
결코 동트게 할 수 없는 저 아침의 성격인 것이다.
우리의 눈을 감기는 빛은 우리에겐 어두움에 불과하다.
우리가 깨어 기다리는 날만이 동이 트는 것이다. 동이 틀 날은 또 있다.
태양은 단지 아침에 뜨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
<월든>_4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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