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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을 이기는 방법,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

polarstarbear 2025. 9. 10.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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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짧은 삶을 살았지만

처음 세상을 바라보며 단어를 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천 개의 단어는 모두 하늘 같은 느낌이었다.

좌절이나 시련, 슬픔, 당신도 알고 있는 모든 단어들이 전부 다 천 개의 파랑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파랑파랑하고 눈부신 하늘이었다.

<천 개의 파랑>_354p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내가 달리고 있는 사실을 모르는 당신에게.


2035년,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말을 타는 기수가 사람이 아닌 휴머노이드로 대체가 됐습니다.

기수 휴머노이드의 공정 과정에서 연구생이 공장에서 우연히 흘린 인지와 학습능력이 있는

칩을 청소 담당자가 생산 라인에 무심코 올려두었고,

두 가지의 우연이 겹쳐 훗날 콜리로 불리는 C-17기수 휴머노이드가 제작됐습니다.

콜리가 탄 화물차가 대전에서 서울까지 이동하며 머리 쪽이 부딪혀

전원이 켜져 실려있는 곳에 나있는 작은 창문으로 하늘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하늘을 보며 콜리는 "찬란하다."라 말하며 세상의 채도가 저렇게 높다는 것에 놀랐고

자신이 이 단어를 아는 것에 놀랐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창을 바라보며 단어를 무작위로 뱉었을 때 콜리가 떠올린 단어는 총 천 개였습니다.

콜리가 도착한 곳은 기수 휴머노이드가 출전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마사였습니다.

앞에 있는 다른 휴머노이드 F-16은 망가져 다른 곳으로 갔고,

콜리는 커다란 경기장에서 자신의 파트너가 될 말인 '투데이'의 고삐를 잡고,

목덜미를 쓰다듬는 '도민주'의 행동을 투데이를 타기 전에 따라 합니다.

이건 왜 한 건가요?

콜리가 물었다. 민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교감한 거야. 이제 너한테 탈 거라고.

손으로 치는데 어떻게 그 말이 전달된다는 건가요?

일종의 암호지. 약속.

약속.

<천 개의 파랑_17p>

콜리는 투데이를 말을 어떻게 타는지 배우며 바람이 부는 결에 따라 흩날리는 갈기를 만져보고 싶어 고삐를 놓았고,

몸체가 휘청거렸습니다.

그 광경에 민주는 놀랐고, "왜 놓은 거야?"라는 질문에 콜리는 그저 만져보고 싶다고 했고

민주는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투데이와 콜리는 호흡의 비유에 걸맞든 완벽한 파트너로 한국 신기록이라는 명예의 타이틀을 달 정도로 빨리 달렸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투데이가 1등에서 속도가 떨어져 9등까지 밀렸을 때

콜리는 자신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어한 다는 걸 알고 스스로 낙마했습니다.

완주해야 한다는 자신의 존재 이유보다 투데이를 지키기 위해 말입니다.

그렇게 투데이는 살았고 콜리는 하반신이 전부 부서졌습니다.

이렇게 콜리의 삶 1막이 끝났습니다.

기수로서 기능을 잃은 콜리는 기수방에 있기 싫다는 마지막 소원을 이뤄 마방 옆

건초더미에 누워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콜리 앞에 한 소녀가 보였고, 그 소녀는 호기심 많은 눈동자로 콜리를 쳐다봤습니다.

"진짜 초원을 달려본 적 있나요?"에 대한 소녀의 답변을 듣고 싶었지만

민주가 마방으로 들어와 답을 들을 수 없었고 다음 날 전원이 꺼졌습니다.

콜리가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그때 보였던 소녀가 눈앞에 있었습니다.

우연재

이건 소녀의 이름.

너는 브로콜리야.

...

줄여서 콜리.

그리고 이건 콜리의 이름.

<천 개의 파랑>_34p

주말에만 경기를 하는 경마장 근처에 식당을 운영하는 집의 딸인 연재는 자신의 언니인 은혜를 찾아 그곳을 찾아갑니다.

연재는 투데이 앞에 있는 은혜와 대화를 한 후 편의점 점장과 나누었던 대화를 곱씹으며

누구보다 목표를 향해 박차를 가했던 순간을 생각합니다.

소프트 로봇 연구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기 위해 준비했던

시간이 연재의 인생에서 액셀러레이터를 가장 많이 밟은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사소한 망설임이 연재를 그대로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투데이에게 마지막 건초를 주고 나가려는 때에 연재가 콜리를 봤습니다.

연재는 콜리의 말을 듣고 이 휴머노이드는 다른 것과 다르다고 생각했고

휴머노이드 중고 거래는 불법이었으나 암암리에 했기에

민주에게 부탁해 자신의 마지막 월급을 쥐어짜 콜리를 구매했습니다. 그렇게 콜리는 연재의 방에서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연재와 은혜의 엄마인 보경은 젊을 때 연기를 했으며 단편에 출연하면서 커리어를 쌓다가

연습 도중 지하에 위치한 연습실의 천장이

무너져 구조용 휴머노이드 다르파에 따르면 생존율 3%에 임박한 보경을 극적으로 구한 건 한 소방관이었습니다.

희박한 확률을 이기고 삶을 유지한 보경이었지만 얼굴에 화상을 입고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 줄 제작사는 없었습니다.

자신이 준비하던 미래가, 자신이 놓이게 된 환경이 무너짐에 따라 보경은 병원에서 우울한 날을 보냈지만,

그날 자신을 구해 준 소방관을 보며 어느 순간 그가 오기 전 씻고, 꾸미며 삶에 대한 의지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은혜와 연재까지 낳은 이들이지만 생존율 80%였던

소방관은 한순간 0%로 떨어지며 화재 현장에서 사망하게 됩니다.

3%의 생존율로 살아남았던 보경은 이제 300%의 삶을 짊어지게 된 셈이었다.

그래서 과거 자신의 어머니가 식당을 운영한 기록으로

작은 가게를 운영하게 된 것입니다. 그곳은 보경 삶의 정착지처럼 느껴졌고, 더는 바라는 것도 없었습니다.

보경은 그저 로봇들이 싫었으므로 더는 자신의 삶에 끼어들지 않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어찌 됐든 보경은 근근하게 사는 형편에 만족하고 죽음이 확률로 계산되지 않고 예견되지 않는 날들을

연재가 쓰레기 같은 기수 휴머노이드를 데리고 오기 전까지는, 누릴 생각이었습니다.

전동 휠체어는 도로로 다녀야 해서 보경이 내키지 않아 했고,

두 다리를 대신할 기계 다리는 비용이 너무 비싸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일련의 이유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은혜는

4년 전 주말 놀이공원처럼 빛나는 경마장에 가고 싶어 가게 일로 바쁜 보경에게 말도 하지 않고

그곳을 향해 나아갑니다. 사람이 많은 경마장에 도착하자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신호탄 소리를 듣고 힘을 내 말들이 경주하는 것을 봅니다.

그 이후 오롯이 앞만 보고 힘차게 내달리는 말들과 사람들의 함성, 바람의 흩날리는 꽃잎을,

이 모든 것이 강렬하게 자리 잡아 경마장의 마방에 몰래 드나든 것입니다.

콜리를 방으로 옮긴 연재는 콜리의 센서나 다른 부분이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하루 종일 어떻게 고칠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찹니다.

학교에서도 공책에 콜리를 고칠 도면을 그리다 차세대 다르파를 주제로 한

전국 고등학생 대회를 같이 나가자며 지수가 찾아옵니다.

연재와 지수는 퍽 친하지 않았고, 지수가 어떻게 연재가 로봇에 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턱 없었지만 지수는 계속해서 연재에게 같이 하자고 말하며 집까지 쫓아갑니다.

연재는 지수를 집에 데리고 갈 마음은 추호도 없었고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지수와의 관계에 선 긋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겪어 왔던 몇몇의 아이들보다 끔찍할 수도 있고 더 나을 수도 있지만

그 희박한 반전에 기대를 걸 만큼 체력과 감정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연재는 또한 타인의 삶이 자신의 삶과 다르다는 걸 깨달아가는 것이, 그리고 그 상황을 수긍하고

몸을 맞추는 것이 성장이라고 믿었고 때때로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과정은 폭력적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지수를 집에 데려가지 않기 위해 학교가 끝난 후 전속력으로 집까지 향했지만,

지수는 전동 킥보드를 타고 따라왔으며 끝내 집으로 가 콜리를 들키게 됩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휴머노이드 부품 납품 업체 중소기업의 사장인 지수는 이를 빌미로 연재와 계약합니다.

같이 대회에 나가면 콜리를 고치는 데 필요한 부품을 지원하고

만약 입상하지 못한다면 제공한 모든 부품을 돈으로 갚을 것을 말입니다.

보경은 콜리와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지만, 둘이 있을 땐 대화 상대를 찾은 것처럼 입을 열었습니다.

한참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하다가 보경은 문득문득 방금 전과 다른 눈을 하고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이런 얘기 전부 그 사람한테 했겠지?

...,

딸이 두 명이나 있는데도 말을 못 꺼내겠더라고, 힘든 애들한테 힘든 거 얹어주는 걸까 봐,

엄마를 신경 써줘야 할 존재로 인식할까 봐.

...,

미안, 인간이 원래 이렇게 주책없어. 그런데 너는 그리움이 뭔지 모르겠지? 부럽다.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

깊은 생각을 한 후 보경은 입을 열었다.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래서 마음에 가지고 있는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내는 거지. 다 사라질 때까지.

<천 개의 파랑>_204p

보경의 눈동자가 노을빛처럼 반짝거렸습니다. 반짝거리는 건 아름답다는 건데, 콜리 눈에 그 반짝거림은 슬픔에 가까워 보였다.

행복이 만병통치약이거든.

...,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그리움이란 그런 것이구나. 콜리에게도 그리워할 순간이 생겼다.

투데이와 주로를 달릴 때다. 투데이가 행복해하는 진동을 느끼면서.

<천 개의 파랑>_205p

하지만 관절이 다나간 투데이는 더 이상 뛸 수 없었고 이틀 뒤면 안락사에 처할 위기에 있었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마방 주치의인 복희에게 2주 후 경기에 뛸 수 있을 것 같다는 동의서를 받았고, 경마장 관리인에게는

연재와 은혜의 사촌인 서진의 경마장 승부조작 사건에 대한 것을 빌미로 출전권을 따냈습니다.

이제 연습해야 할 건 투데이가 가장 느리게 달리는 연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은혜와 연재, 지수, 콜리는 거의 매일 경마장에 갔습니다.

추석 연휴 날에 감기가 온 보경은 보조 아주머니 덕분에 방으로 옮겨졌고,

식당은 연재, 지수, 아주머니가 맡아서 하기로 했습니다.

보경은 걱정되어 나가려다 콜리가 막아 도로 누웠습니다. 그리고 콜리와 대화를 시작합니다.

화재가 난 빌딩 속에 있던 소방관을 기다리던 그 시간에,

반드시 살아서 나오리라 믿고 있는 그 시간 안에 멈춰있다고 콜리에게 말을 합니다.

그 시간들을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렇다면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겠네요.

콜리가 보경을 향해 조금 더 몸을 틀었다.

멈춘 상태에서 빠르게 달리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많은 힘이 필요하니까요.

당신이 말했던 그리움을 이기는 방법과 같지 않을까요?

행복만이 그리움을 이길 수 있다고 했잖아요.

아주 느리게 하루의 행복을 쌓아가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언젠가 멈춘 시간을

아주 천천히 흐르게 할 거예요.

<천 개의 파랑>_286p

연재와 지수는 발표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투데이가 가장 느리게 달리는 연습을 하는 경기가 다가온 날

예전처럼 투데이의 고삐를 잡고, 목덜미를 쓸어내리며 콜리는 말했습니다. "잘 부탁해요."

투데이가 한 걸음, 한 걸음 달릴 때마다 콜리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투데이가 행복해하고 있음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그리고 콜리는 더 빨리 달리고 싶어 하는 투데이의 바람을 모른척할 수 없었습니다. 행복이 고통을 이긴 것입니다.

카본이 아닌 알루미늄으로 다시 만들어진 콜리의 몸체는 투데이가 태우고 뛰기에는 너무 무거웠고,

되살아나지 못한다는 두려움보다 오로지 말을 살려야 하고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존재 자체의 이유만이 있었고,

투데이가 다시 달릴 수 있다는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 떨어졌습니다.

두 번째 낙마였고, 최후였고, 제2막의 마지막이었습니다.

나는 세상을 처음 마주쳤을 때 천 개의 단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천 개의 단어로 다 표현하지 못할,

천 개의 단어보다 더 무겁고 커다란 몇 사람의 이름을 알았다.

더 많은 단어를 알았더라면 나는 마지막 순간

그들을 무엇으로 표현했을까.

그리움, 따뜻함, 서글픔 정도를 적절히 섞은 단어가 세상에 있던가.

천 개의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짧은 삶을 살았지만 처음 세상을 바라보며

단어를 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천 개의 단어는 모두 하늘 같은 느낌이었다.

좌절이나 시련, 슬픔, 당신도 알고 있는 모든 단어들이 전부 다 천 개의 파랑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파랑파랑하고 눈부신 하늘이었다.

<천 개의 파랑>_354p

 

무엇도 배제하지 않고 천천히 걷는 연습 중.

파랑파랑하고 찬란하게 그리고 느리게.


두 번 읽고 새롭게 포스팅한 천 개의 파랑.. 워낙 좋아하는 책이고 재밌어서 4일 만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누구에겐 책을 빠르게 읽는 편이고, 느리게 읽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읽은 부분을 그리워하지 않게 최대한 행복할 수 있게

내용을 곱씹으며 읽었습니다.

책에 나오는 인물, 환경, 배경, 외롭고 그립고 슬프지만 그렇지만 찬란하며 아름답게 나아가는 인물들은 모두 매력적이며,

책을 이끌어나가는 주체입니다. 우연한 일로 만들어진

특이한 기수 휴머노이드인 콜리의 여정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연재와의 대화, 민주와의 대화, 은혜와의 대화, 보경과의 대화, 투데이와의 교감.

포스팅을 꼼꼼히 했다고 생각하지만 책을 읽고 느끼는 점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많은 분이 천선란 작가님의 <천 개의 파랑>을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천천히 나아가는, 그리움을 이기는, 행복을 켜켜이 쌓는

우리는 기쁨을 찾고 고맙고 벅차며 천 개의 파랑 그 이상을 만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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