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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으로 마주한 역사 트라우마,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

polarstarbear 2025. 9. 15.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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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하고 시적인 산문.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다큐멘터리 영화의 텍스트화

포스팅에 앞서 전체적으로 느낀 책에 대한 느낌

역사적 사실을 소설의 소재로 쓰시는 한강 작가님의 책을 이번에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처음 읽어보게 됐습니다.

내로라하는 여러 사람을 제치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님의 책을 읽어보고 싶었고 채식주의자가 아닌

신작인 <작별하지 않는다>를 구매해 읽은 이유는 시간이 지나며 작가님의 글을 쓰시는 스타일이 더 확고해지고

어떤 생각을 하시며 집필하셨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경하'와 '인선' 두 친구를 중심으로 제주 4·3사건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함께 이어지는 이야기는

극적으로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영화를 텍스트화 시킨 것 같았습니다.

실제처럼 느껴질 정도로 작가 님이 많이 자료를 찾아보시고 고민한 후 독자들에게 사건에 대한 고해와 고발을

직접적이고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화, 인선 그리고 제주 4·3사건

간단한 줄거리

 

몇 년 전 학살에 대한 책을 집필하고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피폐해진 '경하'는 꿈을 꿨습니다.

눈이 오는 벌판, 소금처럼 쌓여 빛나던 눈송이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했습니다.

꿈속에서 몸의 떨림은 불안과 두려움이 아닌 무거운 쇳날이 허공에 떠서 내 몸을 겨누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벌판 속 봉분 아래 뼈들을 휩쓸어가기 위해 밀려들어오던 그 시퍼런 바다를 보며 물에 잠긴 무덤들과 침묵하는 묘비들로

이뤄진 그곳이 앞으로 남겨질 내 삶을 당겨 말해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경하는 생각했습니다.

이 꿈이 시작되고 지속적으로 괴롭힌 이후 그녀는 사적인 결별을 했습니다.

이혼을 하고 새로 집을 얻고 그러는 와중에 꾸준히 유서를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말입니다.

유서를 전달받을 사람, 그런 폐를 끼쳐도 되는 사람을 못 정해서 유서를 고치고 미루다 몇 해가 넘어갔습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 추운 한 겨울이 됐을 때 친구 '인선'에게 병원으로 와줄 수 있냐는 연락이 왔습니다.

경하가 기자로 일했을 때 사진작가로 함께 일을 하다 어머니를 보살피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간 인선이 서울 병원에 있는 것은 참으로 어리둥절한 일이었습니다.

인선의 병실을 가니 잘린 손가락의 접합 수술을 받고 그녀는 누워있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접합 부위의 신경을 살리기 위해 바늘이 찔리고 고통을 감내하는 인선은 경하에게 괜찮다고 말해줍니다.

인선의 괜찮다는, 사람을 모로 안심시키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경하는 눈이 오는 벌판에 대한

꿈을 꾼 후 그걸 계시라고 생각한 경하는 그녀와 함께 들판에 검은 나무를 심는 프로젝트를 계획했던 것을 떠올립니다.

한 해 두해 지나다 경하는 프로젝트를 그만두자 했지만,

인선은 이미 시작했다고 경하에게 말을 해주며 괜찮다고 말해줬던 것을 생각합니다.

과거에 잠긴 경하에게 인선은 지금 당장 제주도로 가 자신의 앵무새인 아미에게 물과 먹이를 챙겨달라고 부탁합니다.

아무것도 준비를 하지 않은 경하는 눈이 그친 후나 내일 출발하면 안 되겠냐고 물어보지만,

사고 후 급히 와서 먹이와 물이 부족해 죽을 수도 있다기에

경하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눈이 거세게 오는 제주도로 출발합니다.

제주도에 도착한 경하가 탄 비행기는 악천후로 인해 결항되기 전 마지막 제주도행이었습니다.

그렇게 산골에 있는 인선의 집을 향해 버스를 탑니다.

공항에서 읍내로 도착한 경하는 인선의 집이 있는 세천리까지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눈을 맞으며 기다립니다.

이런 악천후에 정류장에 아무도 없을 것 같았지만 그곳에는 돌아가신 인선의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듯한

머리가 새하얀 노인이 서있었습니다.

두 해 전 제주도 인선의 집에 놀러 온 경하는 그때에 일을 떠올립니다.

치매에 걸렸지만 제주 4·3사건 피해자의 유가족인 인선의 어머니는

경하의 손을 꼭 잡고 그녀를 인선의 친구로 인식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긴장한듯하면서도 따뜻한 손은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렇게 버스에서 하차해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거려 인선의 집으로 향하던

경하는 높이 쌓인 눈 때문에 비탈길을 분간하지 못해 길 아래로 굴러 떨어집니다.

하루 종일 쌓인 눈 덕분에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경하는 추위와 싸우며 건천을 길잡이 삼아 인선의 집으로 향합니다.

인선이 공방에서 사고 당한 후 아무도 불을 끄지 않아 경하는 비탈길에서 올라오자마자 끝내 집을 찾게 됩니다.

공방 안 인선이 사고 당한 곳에 검게 굳은 피 위로 눈이 소복이 쌓였고,

경하와 인선이 하려던 프로젝트에 사용할 검은 통나무들이 공방 안과 밖에 놓여 있었습니다.

안집으로 향하는 굳게 닫힌 문을 열고 경하는 집으로 갑니다.

힘들게 도착한 집은 적막 속 바깥에서 들리는 바람 소리에 창문이 아우성치는 것만 들리고 앵무새는 죽은 채로 발견됩니다.

앵무새를 집 마당 가운데 있는 나무 아래 묻어준 경하는 집으로 돌아와

눈을 조금 붙인 다음 일어나 물을 마시려고 부엌에 나갔을 때,

들리면 안 되는 자신이 묻은 앵무새 소리와 형체가 보이게 됩니다.

더불어 서울 병원에 누워있어야 할 인선 또한 경하의 눈에 보이게 됩니다.

인선과 경하는 정전된 집에서 촛불만을 의지해 인선이 그간 조사해 온

제주 4·3사건에 대해 그리고 직접적인 피해자이자 유가족이었던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온 가족이 살해당했을 때 인선의 작은 이모와 어머니는 심부름 덕분에 참사에서 살아남았지만,

그때 10살배기 아이는 언니의 손을 잡고 눈이 소복하게 쌓인 얼어붙은 시신들을 훑고 다니며

자신의 가족을 찾아다녔습니다. 참사에서 도망쳤다 붙잡힌 자신의 오빠는 발각당해 대구형무소에 갔다가

그 뒤 생사를 몰라 군부정권이 끝나기 전까지  깊게 조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오빠가 있던 대구형무소에 있다가 형량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인선의 아버지조차 어머니의 오빠의 행적을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인선은 이 같은 학살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다 자신이 변하는 것을 느낍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더 이상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상태,

심장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이미 떨어져 나갔으며,

움푹 파인 그 자리를 적시고 나온 피는 더 이상 붉지도,

힘차게 뿜어지지도 않으며,

너덜너덜한 절단면에서는 오직 단념만이 멈춰줄 통증이 깜박이는...

<작별하지 않는다>_316p

그렇게 인선이 제주 4·3사건 대해 구술하는 경하의 환상이 끝나가며 이 책도 마무리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인물들을 통해 전달한 제주 4·3사건

 

'경하'와 '인선'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가 직접 겪은 사건과 눈이 내리는 벌판에 대한 꿈, 부러져도 다시 피는 불꽃.

책에서 제주 4·3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는 경하와 인선은 피해자 유가족과 일반인을 빗대어 표한한 것 같았습니다.

경하의 꿈 속눈이 내리는 벌판 속 바다에 의해 봉분과 잠기는 유골은

일반인들이 제주 4·3사건에 대해 의식하는 사실과 피해에 대한 깊이와 정도를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피해자 유골이 아직도 땅속 깊은 곳에 묻어 있고 우리가 아는 피해의 깊이와 정도는 훨씬 더 거대하다고 말입니다.

경하와 인선이 약속한 프로젝트는 아직도 노력하는 피해자 유가족들과 그저 그런 다른 이의 이야기로 생각하는

노력의 정도 차이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제주 4·3사건으로 일어난 참혹했던 과거의 일은 현재에 이르러 아직도 회복되지 못했으며,

인선이 키우다 죽게 된 앵무새는 직접적인 피해자들과 유가족들도

결국 날개가 꺾여 점차 사라지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독자들에게 알려

사건에 대한 진상과 피해자 유가족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알리는 것 같았습니다.

죽을 고비를 다해 인선의 집에 도착해 앵무새를 찾았지만 결국 한 끗 차이로 앵무새를 살리지 못한 경하처럼 말입니다.

경하의 환상이 끝나가며 촛불 또한 빛을 잃고 그녀는 성냥을 꺼내듭니다.

성냥이 부러졌지만 결국 다시 시도해 불꽃을 만들게 됩니다.

이 책을 읽을, 읽게 된, 읽으신 독자님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힘을 다해 불꽃이 발하는 그날까지

참혹한 사건에 대한 학살에 대한 피해자들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들의 마음의 심지가 꺾여 날지 못하기 전에 바람을 불어드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스팅에 앞서 이 책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텍스트화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처음 경하가 제주도로 넘어가기 전까진 그저 그런 소설의 도입부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제주 4·3사건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고

소설에 대한 재미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흥미와 재미가 섞이며 이 책이 완성되는 듯했습니다.

그만큼 짜임새 있고 마무리까지 완벽하며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직간접적으로 와닿았습니다.

숨을 들어마시고 나는 성냥을 그었다.

불붙지 않았다.

한 번 더 내려치자 성냥개비가 꺾였다.

부러진 데를 더듬어 쥐고 다시 긋자 불꽃이 솟았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작별하지 않는다>_3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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