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arStar🐻‍❄️

길을 잃었을 때나, 길을 찾고 싶을 때 항상 같은 자리에서 빛나는 북극성처럼 길을 알려드릴게요.

언제일지 모르는 위험을 막을 기회, 천선란 작가의 <이끼숲>

polarstarbear 2025. 9. 12. 14:20
반응형

우웅웅우우웅········

은희가 기계음을 흉내 냈다.

"잠수함 타면 꼭 이런 소리가 날 거 같아. 처음에는 잠수함이나 여기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거든?"

은희가 하는 말의 요점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마르코는 잠자코 들었다.

"근데 큰 차이점 하나가 있더라고, 그게 뭐게?"

"바다와 땅?"

"모험과 도망"

하나는 대범했고 하나는 조급했다.

"발견과 추방."

하나는 위대했고 하나는 초라했다.

"미지의 세계와 타락한 세계."

하나는 신비로웠고 하나는 두려웠다.

"우린 산 채로 묻힌 거야."

우리의 세계는 조급하고, 초라하고, 두려웠다.

"이런 걸 산송장이라고 한단다."

<이끼숲>_83p

누군가를 무언가를 구해내는 작가.

천선란 작가님이 말하는 구하는 이야기.

 

천 개의 파랑, 나인,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모우어 이후 <이끼숲>까지 총 5권의 천선란 작가 님의 책을 읽게 됐습니다.

책을 읽으며 작가 님이 공통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은 '구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구하는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 배경, 인물, 상황, 단어, 문장까지

생각과 시선에 따라 독자들마다 느끼는 여러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다눈, 우주늪, 이끼숲 3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연작소설인 <이끼 숲>또한 각 이야기마다 슬픔, 상실, 좌절 속에서

끝내 무언가를 구해내게 됩니다.

언제일지 모를 위험을 막을 수 있는 건 바로 지금이라고, 우리는 반드시 구해야 한다고,

이에 적극 동의하며 구하는 손길을 보태어본다.

"모험과 도망", "발견과 추방", "미지의 세계와 타락한 세계"가 있다면,

이끼숲의 아이들이 그러했듯 천선란은 전자를 향해 갈 것이다.

<소유정_문학평론가>

'구하는 이야기'를 쓰시는 작가 님 덕분에 저 또한 천 개의 파랑을 읽고 구해졌습니다.

느림과 행복, 애정과 사랑 그리고 내가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게끔 제게 밧줄을 내려주셨습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분들이 본인에게 떨어진 구원의 밧줄을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구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고 이렇게 끝나는 것 같습니다.

미지의 세계 속 잘게 부서진 별.

끝내 닫힌 세계를 뚫고 나가는 지극한 슬픔과 사랑.

바다눈
첫 번째 이야기

경비원에 지원해서 일을 시작한 지 하루인 오늘, 마르코는 지하 계단 쪽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천장이 무너질 듯 먼지가 떨어지고, 틈이 벌어져있지만 애써 무시하며 그곳으로 향합니다.

노래를 쫓아 이동한 마르코는 반 층 짜리 계단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이토록 감미롭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들었습니다.

노래를 들으며 문 손잡이가 없는 문이기에 노크를 할까 말까

고민을 하는 사이 안에서 단정해 보이지는 않는 소녀가 나옵니다.

소녀는 마르코와 열다섯으로 동갑인 은희였습니다.

마르코는 자신과 같은 용역업체에서 파견 나오고, 입사일도 똑같은 은희가 든든한 지원군으로 느껴졌습니다.

우연하게 만난 두 사람은 은희는 퇴근 시간이었기에 출입문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내일 만남을 약속 후 헤어집니다.

다음 날 마르코는 출근 전 거울 앞에서 가르마 방향을 몇 번이나 바꾸며

은희를 만나는 것을 기대하며 일하는 곳인 연구소로 향합니다.

출근길에 그의 친구인 유오를 만납니다. 유오는 식물을 좋아하는 친구로 자료 열람실에 몇 시간이나

틀어박혀 책을 읽기도 합니다.

똑같은 열다섯 살인 유오도 지하 도시의 규칙에 따라 직업을 정해야 하지만

그는 지상 탐사대를 하고 싶어 해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유오와 헤어진 후 마르코는 은희와 만날 수 있다는 이유로 살면서 처음으로 점심시간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한때 음식이 최고의 사치품이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하 도시에서 음식은 생명 유지를 위한 연료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마르코의 식사는 매 끼니 스무 가지가 넘는 알약과 물, 약간의 탄수화물과 단백질 정도였습니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VA2X'입니다.

VA2X는 지하 도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요소였으며 복용을 오랜 기간 중단하면 환각, 정신 분열, 우울증 따위의 정신 질환과 뼈가 삭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는데 이 때문에 정신재활원에 실려가기도 합니다.

마르코는 기다리고 기다리가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은희를 만나 같이 식사를 했지만,

얼마 남지 않는 점심시간에 더불어 은희의 오늘 근무지가 매우 멀어 마르코가 생각했던

점심시간과 다르게 흘러가며 끝났습니다.

마르코는 오후 근무를 하면서 연구원이 일하는 이야기를 의도치 않게 엿들었습니다.

바로 지하 도시의 가상 속 아바타가 목소리를 사고파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뿐인 아바타에 자신의 목소리 대신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사서 입히는 것입니다.

대신 하나밖에 없는 목소리라는 희소성 때문에 목소리를 판 사람은 성대가 파괴 당하며 아예 목소리를 잃게 됩니다.

휴무인 주말 마르코의 친구인 톨가가 그의 집에 찾아왔습니다.

톨가는 가상 세계에서 만난 디에고라는 형과 밀접하게 지내며

지하 도시 곳곳을 누비며 둘만의 모험과 추억을 쌓고 있었습니다.

마르코는 이런 톨가에게 은희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좋아하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 부담 갖지 말고 얘기하라는 그의 조언에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마르코는 은희의 이야기를 톨가에게 하는 동안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순된 두 가지 감정을 느꼈습니다.

하나는 후련함이었고 하나는 단단해짐이었습니다.

은희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마음에 있던 은희가 빠져나감과 동시에

그 자리에 더 단단한 은희가 들어찼습니다. 줄곧 듣기만 하던 톨가는 마르코의 마음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너 그 사람의 목소리에 흠뻑 빠졌구나!

그 목소리를 사랑하는 거야.

상대방이 가진 만 가지의 특징 중에서 단 하나의 특징이 마음에 쏙 들어오면,

사랑이 시작되는 거 같아.

나는 그 형이 문장 끝에 마침표를 잘 찍는 게 그렇게 좋았어.

<이끼숲>_40p

이후 마르코는 은희와 대화 도중 '네 노래를 듣고 싶어.'라고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은희는 그런 마르코에게 마음껏 노래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곳인 재즈바에 가자고 말을 합니다.

재즈바가 위치한 B45층은 지하 도시의 유흥층이었으며 도시에서 성인의 기준인 16살을 넘어야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은희는 입구를 지키는 사람과 안면이 있는지 자연스레 나이를 속여 재즈바에 갔습니다.

둘이 주문한 무알코올 음료 중 한 잔은 커다란 바다 생물의 사체에서 나오는

배설물이나 미생물이 눈처럼 내려서 붙여진 이름의 '바다눈'이었습니다.

재즈바에 무대에서 음악에 가사가 없는 연주가 흘러나오다 어느 순간 은희가 이따 보자는 말을 하며 훌쩍 자리를 떴습니다.

은희는 곧 무대 위에서 노래를 시작했고 지하 도시에서 사라진 절대 볼 수 없는

밤하늘의 별을 구현한 스페이스 스카이의 밤하늘은 컴컴한 심해 같았고,

빛나는 별은 잘게 부서진 은희의 목소리 같았습니다.

마르코는 그녀의 노래를 훗날 거대한 고래의 울음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회사에선 파업이 계속해서 진행돼 마르코는 파업을 하는 직원의 경비 일도 도맡아 해야 했기에

며칠째 은희를 만나지 못해 집에 찾아갑니다.

은희의 집에 도착했지만 어머니와 살기엔 집은 매우 좁았고 작았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어 간병하느라 출근을 못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후 파업은 결국 실패했고 커커스는 병원에 실려갔지만 아무도 그의 모습을 보질 못했습니다.

그렇게 해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마르코 또한 은희와 만나기로 약속했기에 그녀의 집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약속 시간이 오래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고 그 후에도 얼굴을 보지 못합니다.

어느 날 씨앗 저장고에서 일을 시작한 톨가가 잎이 무성히 자란 상추를 보여주겠다며 집에 초대했습니다.

이미 와있던 유오와 의주의 외침 속에서 캄캄한 톨가의 방 안에서 희미한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컴컴한 방안에는 톨가의 패드가 홀로 빛나고 있었고 낯선 아바타가 해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봤습니다.

톨가는 그 아바타를 보고 최근에 목소리를 샀다고 했습니다.

톨가가 나가고 마르코는 방구석에 주저앉아 울음을 참지 못하고 울었습니다.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그친 뒤에도 마르코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우주늪
두 번째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의 시작은 의주의 쌍둥이인 의조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지하 도시에서는 계획되지 않은 아이는 수용할 수 없는 정책이 있습니다.

이곳에 사는 모든 아이는 언제 임신할 것이며 언제 출산한 것인지 위원회에 정해진 때에

모든 계획을 보고한 아이만 출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곳에 사는 모든 사람은 머리에 칩을 이식하고 칩에는 이름과 출생일 고유 아이디가 들어 있어서

구역과 구역을 나누는 게이트를 통과할 때마다 인식됩니다.

그게 없으면 '정체불명' 혹은 '미입력자' '불법 거주자' '비시민' '침입자' 따위가 되어 체포됩니다.

그래서 하나인 줄 알았지만 출산 후 쌍둥이인 걸 알게 된 의주와 의조의 부모님은

가위바위보를 해 누구를 등록할 것인지 정했습니다.

가위바위보의 결과로 의주는 정책에 알맞은 등록을 했고 의조는 시에 들키지 않기 위해 꼭꼭 숨으며 생활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의조는 집에서 시작되어 도시 곳곳에 연결된 배관을 몰래 기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갈 곳이 없어 그냥 앉아있기도 했지만 의주를 따라다니면

어딜 가든 하루의 끝은 반드시 집일 테니까 그녀를 쫓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의조는 의주를 따라다니며 처음 보는 그녀의 모습, 친구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낯설고 질투가 났고

함께일 때 자기 자신을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는 관계에 대한 감정이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의조는 환풍구를 통해 돌아다니다 의주의 친구, 치유키가 일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병원 내에서 미입력자를 죽이는 일을 하는 치유키는 일을 할 때마다 자신의 몸에 자해를 하기도 했습니다.

일할 때 치유키는 수면은 잠잠하고 고요한데,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런 눈으로 환풍구를 볼 때가 있습니다.

마치 그 안에 웅크려 있는 의조와 눈을 맞추듯이 말입니다.

미입력자로 지하 도시에 태어나 처분 대상이라 꼭꼭 숨어 다니던

의조는 의주나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자신을 발견했을 때

기분과 마음은 달리 표현할 방법도 없고 표현할 수 있는 단어도 없었습니다.

환풍구를 사이에 뒀지만 의조는 확신했습니다. 치유키가 그녀를 쳐다봤다는 것을, 그리고 치유키가 말했습니다.

"나와", "괜찮으니까 숨어 있지 말고 나와."

지상에는 두 종류의 동물이 있었대,

울타리 안에 사는 동물과 울타리 밖에 있는 동물.

그 둘은 절대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었다고 해. 이해하지도 못하고, 섞일 수도 없는,

고작 울타리 하나뿐인데 그건 둘 중 누구도 영원히 넘지 못했다더라.

의주야, 나는 울타리 밖에 사는 동물이야.

왜냐하면 나는 결국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거든.

<이끼숲>_121p

손가락 하나가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는 틈으로 의조는 치유키와 눈을 맞추고, 서로의 손가락을 만져 보고 언어를 들었습니다.

이때 의조는 치유키에게 언어를 배우며 '나'가 무엇인지, '너'가 무엇인지를 알게 됐습니다.

빨려 들어가면 아무것도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은 우주의 환풍구일지도 모르는 것을,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것들이 다른 곳에서 배출되는

웜홀의 개념을 배우며 의조는 블랙홀과 웜홀이 지하 도시의 환풍구 같았습니다.

어디와 연결되는지도 모르는 웜홀로 기어가 한 번은 정화 시설로 가서 지독한 악취를 맡았고,

한 번은 냉동 창고에 떨어져 죽을 뻔도 했습니다.

그래서 의조가 치유키에게 글을 배우고 처음 한 것은

환풍구에 어느 길이 어느 곳으로 통하는지에 대한 이정표를 만들었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환풍구를 기어다니던 의조는 자신이 쓴 이정표 아래 '고마워요'라는

글자를 보고 모험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언젠가 치유키에게 들은 지하 도시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는 폭탄이 들어있는 방을 찾기 위해 말이죠.

자신의 마지막 안부와 편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정리한 편지를 마무리하며 의조는 덧붙입니다.

"가끔 통로에서 이전에 없던 바람의 흐름이 느껴져."

"조심해, 어쩌면 이곳, 붕괴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이끼숲
마지막 이야기

밤인지 낮인지 알 수 없는 채로 방 안에 틀어박혀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즐거운 생각을 할까 합니다.

너를 와락 끌어안아버리고 싶던 충동, 사랑이라는 것을 처음 자각한 순간,

이름 모를 조형 꽃이 쓰러지지 않도록 흙을 모아주고 다져주고 있던 너,

하지만 너를 끌어안은 적은 딱 한 번뿐이고 그때 너는 냉장고에 넣어둔 바게트처럼 차갑고 딱딱했는데,

결국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면 나는 오늘도 즐거워지는 데 실패하고 어쩔 수 없이 눈을 뜹니다.

오늘도 슬픔, 상실, 좌절, 무력감에 빠져 방 안에 있던 나를 부르는 치유키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부탁이야, 소마. 얼굴 좀 보여줘." 하지만 끝내 문을 열지 못한 채 이불 속에 들어가 입을 벌려 울기 시작합니다.

친구들이 자신을 걱정하는 소리, 일하는 곳에서 정신재활원에 들어갈까 걱정하며 안위를 묻는 팀장,

VA2X를 안 먹을 시 나타나는 부작용, 정신재활원의 무서움을 이야기를 들어 알지만

모든 것을 애써 무시한 채 다시 몸을 말아 눕습니다.

소마는 유통기한이 열흘 넘게 지난 땅콩 우유를 들고 걸쭉한 느낌도 없고

냄새도 괜찮은 그것을 마시며 땅콩에 대해 생각합니다.

지상에 노란 꽃을 피웠다가 그 꽃이 떨어질 즈음 씨방 자루가 땅을 파고들어 열매를 맺는데, 그 열매가 바로 땅콩입니다.

땅속으로 기어들어 가야만 자랄 수 있는 땅콩은 현재 땅속이어야만 살 수 있는 인간과 닮았다고 생각하며,

지금 우리의 삶은 예전 문명으로부터 떨어진 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언젠가 그깟 땅콩에게 떨어지는 꽃의 삶 따위의 이름을 붙여준 옛사람들을 비웃는 동안

그 애는 아몬드에 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몬드는 몸에 들어가면 시안화수소를 만드는 데 그게 청산가리랑 똑같아. 그래서 청산가리의 냄새가 아몬드와 비슷하고,

그러니까 아몬드는 사실 인간이 먹지 못하도록 생겨난 거지.'

소마는 침대에 누워 아몬드 맛을 생각합니다.

'소마 만약 네 앞에 아몬드가 있어, 근데 이게 독이 있는 야생 아몬드인지 독이 없는 아몬드인지 몰라

그럼 너는 어떡할 거야?'

'나는 먹어보고 싶어, 내가 먹는 아몬드는 독이 없을 거라고 믿어, 나는 운이 되게 좋으니까.'

그 애와 함께 나누었던 아몬드와의 대화의 생각을 끝낸 후 처음 초인종이 울릴 때까지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었습니다.

가라고 소리를 지를까 고민했지만, 문 너머에서 말하는 마르코의 목소리에 마치 그날처럼 처음 듣는 것같이 낯설었습니다.

현관문을 열자 마르코는 단단한 목소리로 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소마는 가지 않겠다고 찾아오지 말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닫히는 문틈으로 마르코는 소마에게 말합니다.

"유오의 클론이 오늘 폐기된대."

클론은 작업 도중 불의의 사고로 인한 신체 훼손, 절단, 괴사 등을 인지하고 동의했다는 뜻이며

신체를 이식할 수 있는 클론이 있으니 사고에 대한 별다른 소송이나 피해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잘못 박은 철심에 지반이 무너져 내리기도 하고, 지하수가 흘러와 홍수가 난 적도 있으며

전선에서 스파크가 튀어 폭발이 일어나기도 하는

위험한 곳에서 삶을 확장하는 일을 하는 유오가 클론 제작에 동의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예전을 떠올리다

마르코를 붙잡고 집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마르코는 유오의 클론을 훔쳐 일층의 돔으로 데려갈 계획을 소마에게 말합니다.

일층의 돔은 지상의 숲을 재현해둔 녹음이 짙다고 지하 도시의 사람들은 믿고 있었습니다.

고민하다 소마도 마르코를 따라 정신재활원에 넣으려고 소마 집에 찾아온 사람들을 피해 환풍구로 탈출합니다.

지하 도시 지도를 거의 외우고 있는 마르코를 따라 환풍구를 통해 치유키 집에 무사히 도착하고

유오의 클론을 훔쳐 일층의 돔으로 데려갈 계획을 세웁니다.

계획은 클론이 있는 연구실에 도착할 때까지 타이밍에 맞춰 의주가 감시 카메라를 끄고,

클론을 훔친 뒤 씨앗 저장고에서 온실로 가는 승강기를 타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곧바로 계획을 실행에 옮긴 이들은 치유키와 소마가 클론을 보관하는 연구실에 들어갈 때

감시 카메라가 꺼지는 것을 의심해 다른 경비원들이 찾아와 마르코가 자연스레 말을 걸며 이들을 데리고 사라집니다.

그렇지만 클론을 업고 씨앗 저장고를 향할 때 이들 추격하는

추격조가 생겼고 승강기를 타기 직전 치유키의 몸에 빨간 점들이 노려지는 것을 보며

소마는 유오의 클론을 업고 일층 돔으로 향합니다.

도착한 일층 돔은 사람들의 말과 달리 식물이 죽어 회색빛이 나돌았고, 위원장만이 화분에 식물을 심고 있었습니다.

위원장은 소마에게 나갈 것인지 돌아갈 것인지 정하라 하며 길을 터줍니다.

소마는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밖을 향해 발을 내딛습니다.

수평선에 반쯤 걸쳐있는 태양, 많은 이끼, 발등에 올라오는 작은 벌레,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바라보며

얼마 가지 못하고 큰 나무에 기대 쓰러지면서 이야기는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소마, 나는 우리가 이끼였으면 좋겠어.

나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바위틈에도 살고, 보도블록 사이에도 살고 멸망한 도시에서도 살 수 있으면 좋잖아.

고귀할 필요 없이, 특별하고 우아할 필요 없이 겨우 제 몸만 한 영역만을 쓰면서

지상 어디에서든 살기만 했으면 좋겠어, 햇빛을 많이 보기 위해 그림자를 만들지 않고,

물을 마시지 못해 메마를 일도 없게, 그렇게 가만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거야.

시시하겠지만 조금 시시해도 괜찮지 않을까?

<이끼숲>_247p

"나는 그 애를 놓지 않는다. 절대로."

마침내 닫힌 세계를 뚫고 나가는 지극한 슬픔의 힘.


지상에서 쫓겨나 지하 도시에서 생활을 시작하는 인류는 엄격한 정책과 규칙을 정해 살아갑니다.

철저한 감시와 관리 아래 살아가는 이들은 마치 모든 것을 자신의 감시 아래 놓았던

1984의 빅브라더를 생각나게 하기도 합니다.

은희를 사랑한 마르코, 미입력자로 지하 도시를 누비는 의조, 유오를 잃은 슬픔을 딛고 밖으로 향한 소마.

모두 상실의 아픔을 안은 채 살아갑니다. 그럴만한 삶의 이유를 만들면서 말입니다.

구하는 이야기를 쓰신 천선란 작가님은 이야기를 나아가게 하는 힘,

탄탄한 설정을 통해 결국 모두를 구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만든 소설 속 지하 도시, 상실에 빠진 인물들까지 말입니다.

언제 한 번에 주저앉을지 몰라.

발 딛고 선 이 자리에서 언제 추방당할지 몰라.

단호하지만 다정한, 조심스럽고도 분명한 목소리로 천선란은 소설을 통해 말한다.

언제일지 모를 위험을 막을 수 있는 건 바로 지금이라고

우리는 반드시 구해야 한다고, 이에 적극 동의하며 구하는 손길을 보태어본다.

"모험과 도망", "발견과 추방", "미지의 세계와 타락한 세계"가 있다면, <이끼숲>의 아이들이 그러했듯

천선란은 전자를 향해 갈 것이다.

<이끼숲_ 소유정 문학평론가의 말_ 276p>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