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ar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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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사로운 햇볕 같은 침묵, 클레어 키건 작가의 <맡겨진 소녀>

polarstarbear 2025. 9. 12.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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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왔던 길을 따라 돌아가는 모터 소리가 들린다.

아빠는 왜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없이,

나중에 데리러 오겠다는 말도 없이 떠났을까?

<맡겨진 소녀>_21p

찬란한 여름의 따사로운 햇볕 같은 침묵을 마음에 머금다.

언젠가 우리들은 침묵이 필요할 수도 있다.

책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1980년대 북아일랜드입니다.

이때 아일랜드 공화주의자들이 정치범의 지위를 요구하며 벌였던 단식 투쟁이 있기도 했습니다.

책의 배경은 크게 중요하진 않지만, 배경과 상황을 상상하며 읽으면 책과 더 친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나'는 주말 미사를 드리고 킨셀라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집에 맡겨졌습니다.

두 분은 키가 컸고 처음 만났지만 무척이나 저를 반겨줬습니다.

킨셀라 부부와 나의 아빠는 서로 인사를 했고 간단한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루바브를 선물로 받은 아빠는 빠르게 차를 몰고 돌아갔습니다.

내 짐도 내려주지 않은 채 말이죠. 그래서 킨셀라 부부 집에 있는 좀 큰 옷을 입었습니다.

소매는 걷고, 허리엔 버클을 꽉 조여서 말이죠.

그렇게 챙겨주시며 킨셀라 아주머니는 나와 함께 우물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나랑 우물에 가보자. 아주머니가 말한다.

지금요?

지금은 안 되니?

이 말을 하는 아주머니의 말투 때문에 왠지 우리가 하면

안 되는 일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거 비밀이에요?

뭐?

그러니까,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되는 거예요?

<맡겨진 소녀>_26p

아주머니의 분위기와 말투 때문에 비밀로 해야 하는지 궁금했던

나는 이 집에는 비밀이 없고 대답은 '예'가 아니라 '네'로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며

우물로 향했습니다. 우물은 생각보다 깊었고, 일렁이는 물결에 씻기 전 집시 같은 내 모습이 아니라

깨끗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고 뒤에서

아주머니가 지키고 서 있는 내가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 우물 물을 마셨습니다.

그다음 날, 나는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겪어본 적 있는 기분을 느끼며 잠에서 깼습니다.

매트리스를 본 아주머니는 그것이 낡고 습해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하며 함께 깨끗이 빨아 햇빛에 건조했습니다.

킨셀라 부부 집에서 지내며 나는 갖가지 잡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식빵을 굽고, 파를 뽑고, 우유를 짜고, 우편을 가져오는 일을 하며 말입니다.

시내에 나가서 새로운 원피스와 신발도 사고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 죽었다는 대화를 듣고 킨셀라 부부는 나를 혼자 둘 수 없어 초상집에 데려갑니다.

초상집에 있다가 나 때문에 킨셀라 아저씨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밀드러드 아주머니가 잠시 자기 집에서 맡아주겠다며

나를 데리고 초상집에서 데리고 나왔습니다.

밀드러드 아주머니네에 가며 호기심이 많으신지 내게 이것저것 물으셨고, 킨셀라 부부의 속 사정도 내게 말해줬습니다.

킨셀라 씨네 아들 말이야. 멍청하긴. 몰랐니?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게 두 사람이 널 만나기 위해서 굴려야 했던 바윗돌이었나 보지.

애가 그 집 늙은 사냥개를 따라서 거름 구덩이에 들어갔다가 빠져 죽었지 뭐니?

<맡겨진 소녀>_64p

초상집에서 집으로 향하는 킨셀라 부부가 나를 찾아와 함께 집으로 향하며 밀드러드 아주머니랑 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중에서는 부부의 아들이 죽었다는 것을 말해준 것도 포함됐어요.

집에 도착하자 아저씨는 사포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내 새 구두 밑창을 문질렀습니다.

그리고 구두를 길들이기 위해 바다로 향합니다.

파도를 따라 들어갔다가 나오며 해변 곳곳을 누비며 킨셀라 아저씨와 대화를 했습니다.

가끔 어부들이 바다에서 말을 발견하는 이상한 이야기, 언젠가 바다에 빠진 망아지를 끌고 나온 이야기를 말이죠.

이상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란다. 아저씨가 말한다.

오늘 밤 너에게도 이상한 일이 일어났지만, 에드나에게 나쁜 뜻은 없었어. 사람이 너무 좋거든,

에드나는, 남한테서 좋은 점을 찾으려고 하는데,

그래서 가끔은 다른 사람을 믿으면서도 실망할 일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라지.

하지만 가끔은 실망하고.

<맡겨진 소녀>_72p

"아저씨가 웃는다. 이상하고 슬픈 웃음소리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아저씨가 말한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맡겨진 소녀>_73p

그렇게 계속 걸으며 조개껍데기도 줍고 달빛 속을 계속 거닐다

아저씨가 나를 자기 딸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 끌어안아주셨습니다.

이후 일주일 동안 비가 내리고 어머니에게서 돌아와도 될 거 같다는 편지가 왔습니다.

돌아가야 하는 사실에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꾹 참고, 킨셀라 아주머니가 스웨터를 짜주신다고 하셔서 도안을 골랐습니다.

돌아갈 날이 다가오고 마지막으로 무엇을 도와드리면 좋을까 싶어서 혼자 양동이를 들고 우물로 향했습니다.

비가 내린 탓에 우물은 더 깊어졌고 아주머니가 하셨던 것처럼 양동이를 우물에 띄웠다가, 삼키게 했다가, 가라앉혔습니다.

하지만 양동이를 들어 올리려고 남은 한 손을 마저 뻗었을 때

내 손과 똑같은 손이 물에서 불쑥 나오는 듯하더니 나를 물속으로 끌어당겼습니다.

내가 우물에서 발견된 것은 그날 저녁도, 내일도 아닌 그다음 날인 일요일 저녁이었습니다.

푹 젖은 채 우물에서 내가 돌아오자 아주머니는 나를 얼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따뜻한 음료와 아스피린을 주셨고,

그저 오한이 든 것뿐이라며 내게 말해주셨습니다.

결국 나는 오한에 걸린 채 집으로 돌아왔고 내 모습을 보며 아빠는 킨셀라 부부께 애도 제대로 못 보냐며 구시렁 됐습니다.

간단한 인사와 감자를 나눠주고 돌아가는 킨셀라 부부가 차를 세우고 대문을 여는 소리를 듣자

나는 킨셀라 부부 집에서 쉴 새 없이 우편함에 달리며 왔다 갔다 한 솜씨를 내뽑으며 아저씨께 와락 안겼습니다.

아주머니의 흐느끼는 소리, 아저씨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진입로를 보며

품에서 내려 아주머니에게 절대로,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얘기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더욱 심오한 무언가 때문에 나는 아저씨의 품에 안긴 채 꾹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맡겨진 소녀>_98p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장 섬세한 사랑.

내게 안겨진 다정함과 따스함.

 

짧은 이 책에서 느껴진 것은 슴슴한 재미였습니다. 그저 아일랜드의 한 소녀가 먼 친척 집에 맡겨진다는 이야기.

특별한 반전도 나온 것도 독자가 무슨 일이 벌어질 거 같은 문장을 읽고 하게 되는 '의심'과 '생각'

제 생각엔 작가님이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것은 '생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완전히 풀어내지도 않고 깊게 속 사정을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책을 다 읽을 때쯤엔 아 이렇게 됐구나,

나는 이렇게 성장했고 나처럼 말입니다.

킨셀라 부부 아들이 죽은 이야기를 듣고, 바다에 가서 아저씨의 침묵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내가 부부를 위해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한 행동. 하지만 이마저도 작가님은 책에서 다 풀어주시지 않습니다.

'어떻게', '왜', 이렇게 됐을까? 란 의문을 독자 스스로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면 되는 거 같습니다.

상실 뒤의 나날들을 미움과 증오와 복수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무화 시키는 침묵으로 보듬으며 살아가는 킨셀라 부부에까지,

깊고 서정적이며 감동적인 이해가 모든 장면에 램프처럼 환하게 가닿는다.

김금희(소설가)_책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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